(이 글은 다소 어렵고 미묘한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어 이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글을 먼저 읽고 나중에 이 글로 돌아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긍휼을 베풀기로 선택하신 죄인들을 위한 대속적인 삶과 죽음, 그분의 죽음으로부터 부활, 그리고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권위를 포함하는 역사적 사실의 선포입니다. 복음은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宥和)시키는 유일한 방법을 보여주며, 또한 복음은 이 구원의 좋은 소식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그들의 죄를 은혜롭게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줍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죄를 회개하거나 예수님께 삶을 헌신하거나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시도록 기도하거나 예수님과 친교를 갖거나, 또는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거나 예수님을 신뢰하는 어떤 신비롭고 모호한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문법적으로 믿다는 (~을/를 믿다) 대상 (목적어)이 필요한데 그 대상 (목적어)이 무엇을 향해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대상은 무언가를 하라는 명령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믿으라"라는 명령은 우리에게 복음을 가리키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회개와 믿음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합치는데 이 명령을 사용합니다. 반대로 믿음의 대상은 항상 평서문(선언 등)이어야 합니다. 복음의 내용은 평서문이므로 "나는 복음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때와 같이 복음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평서문을 믿는다는 것은 그 평서문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 평서문이 참임을 확신한 것처럼(롬 4:21-22, 히 11:11), 믿음은 복음의 내용이 참임을 확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일이 참되다는 마음의 확신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이해는 사도들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요한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증언도 받아들이거늘, 하나님의 증언은 더욱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그 증언을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신 그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일 5:9-10. 또한 데살전 2:13, 데살후 1:7-10 및 2:10-14에서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사도들의 증언을 믿는 것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증언을 받는 것은 사람의 증언을 받는 것과 똑같지만, 하나님의 증언은 더 권위가 있고 그 증언을 받으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요일 5:11-13).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에 그 증언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즉, 그 증언을 통해 설득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증언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증언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한 것이다" (요 3:32-33), 그리고 이 구절 바로 뒤에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요 3:36)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증언, 즉 그분이 세상의 구세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참된 것으로 확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 20:29-31, 요 4:42, 요일 4:14). 이를 뒷받침하듯 성경에서 '믿음'을 정의하는 유일한 구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히 11:1). 이 정의를 복음에 적용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본 사람은 우리 세대에는 아무도 없지만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의 목격담이 참된 것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즉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성취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갖게 되었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요 20:28-31, 요일 5:13).
복음의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믿음은 기쁨과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중요한 사실들을 이해하고 있지만,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과의 친교 갖는 것들을 믿음과 섞어서 복음의 유익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과의 친교를 갖는 것이 구원받는 믿음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믿음을 무효화하고 교활한 형태의 자기의 의와 신비주의를 도입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의와 신비주의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확신이 없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확신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누구도 복음의 유익을 획득하거나 복음을 마치 계약서처럼 거래하듯 성사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하거나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거나 예수님께 삶을 헌신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뇌물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긍휼과 은혜에 따라 죄인들에게 그분의 선물과 은사를 주시는데, 복음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을 깨닫게 되는 것뿐입니다 (고후 4:3-6, 골 1:5-6, 이사야 43:10-12). 여러분, 행위나 소위 "신앙생활"을 믿지 말고 복음의 사실들을 그대로 믿고 복음이 우리의 기쁨과 확신이 되게 합시다.